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가의 난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永嘉之亂 [[중국]] [[서진]] 말기, 북방의 이민족들인 [[오호#s-2]](五胡)에 의해 일어난 대침공을 지칭한다. 중국 [[한족]] 역사상 [[정강의 변]], [[토목의 변]]과 함께 3대 굴욕으로 손꼽히며,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역사적 여파를 미쳤다. '''영가'''의 난이라는 것은 이 난이 [[회제(서진)|진회제]](懐帝) 사마치(司馬熾)의 연호였던 [[영가]](永嘉, 307년~312년) 연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. 일반적으로는 낙양 함락과 회제의 죽음까지로 보지만, 넓게는 [[흉노]]의 [[유연(전조)|유연]]에 의한 전조의 건국부터 서진의 멸망까지를 영가의 난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.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 일어난 [[게르만족]]의 [[게르만족의 대이동|대침입]]과 [[서로마 제국]]의 [[오도아케르|멸망]]의 과정과도 닮은 점이 많다. 다만 서로마 제국은 분할 전부터 몇세기간 쌓여온 문제점들로 인해 서서히 약해지다가 망한 것과는 달리 영가의 난은 이전 시대들이 촉발한 문제점들이 없는건 아니나 근본적으로 [[팔왕의 난]]이라는 대사건으로 국력과 지방 통제력이 바닥을 친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이며 때문에 영가의 난은 10년도 안 돼서 서진을 끝장낸 반면 서로마 제국은 수십년은 존속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